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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건축가에게 까치가 감나무에 집을 짓는다.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감나무 두 그루를 남겼는데 그중 한 곳에 집을 짓겠다고 난리다. 나와 건축주, 현장소장 셋은 까치가 뭘하는지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부리로 물어서 감나무 중간쯤에 앉는다. 나뭇가지를 이리 놓고 저리 놓아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게 놓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다 한군데를 정한 모양이다. 나뭇가지를 쌓아가는 그곳이 하필이면 주차장 바로 위다. 아이고, 거기는 안되는데. 그러나 까치는 마음을 정했는지 새똥으로 확실한 영역 표시를 한다. 인간들은 고민에 빠진다. 저기에 차를 세우면 분명 지붕이 온통 새똥으로 뒤덮일 게 뻔하다. 이 나무가 아니라 뒤에 있는 저 나무, 잔디 위로 가지를 뻗친 저 나무라면 전혀 문제.. 2021. 3. 17.
이케아가 있는 풍경 홈퍼니싱(home furnishing)이라는 말이 있다. ‘집 꾸미기’, ‘집 단장하기’라는 뜻인데, 가구, 소품, 패브릭 등을 통합해서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홈퍼니싱을 표방한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우리도 수준 높은 디자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누려 보는구나, 생각했다. 건축가들이 다채롭게 활동하고 건축자재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물의 외관은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집 안을 채우는 일은 결국 집주인의 몫이다. 그건 집주인이 자신의 취향을 공간에 반영하는 경험이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케아가 완벽한 해답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재료가 아주 좋은 것도,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가구부터 조명, 식기, 공구, 화분, 소시지와 쿠키까지 온갖 분야를 한자리에서 경험.. 2021. 3. 17.
태릉선수촌 올림픽이 끝났다. 동계 올림픽에 이렇게 열광한 건 처음이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1등 만능주의가 아니어서였다. 스포츠를 ‘즐긴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 경쟁상대인 선수들조차도 경기 후에 서로 축하하고 위로하는 모습에 이게 진짜 스포츠라는 생각도 했다. 심각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과거의 국가대표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스포츠가 주는 순수한 열기와 카타르시스에 열광했던 2주였다.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진천선수촌’이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선수촌하면 태릉인데 그 사이 선수촌이 옮겨갔단다. 그럼 태릉선수촌은 어떻게 되나? ‘국가대표’와 나란히 놓일 만큼 상징적인 장소가 아닌가? 사실, 말 그대로 국가대표가 되고자 하는 선수들만 출입하는 곳이니 나와는 큰 상관이 없는 장소지만 그래.. 2021. 3. 17.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다. 온수관이 얼어버렸다.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수도관이 얼까 봐 기온이 영하로 조금만 떨어져도 수돗물을 똑똑 흐르게 틀어두었다. 보일러가 얼까 봐 밤에도 2시간에 10분씩 돌아가게 예약설정을 해놨다. 작년 겨울을 잘 넘겼기에 올해도 그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영하 17도가 예고된 날 저녁 집주인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은 온수도 졸졸 흐르게 틀어놔요” 그 당부를 대충 흘려 들은 결과는 아무리 돌려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 보일러회사의 A/S 전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연결되지 않았다. 동파가 많은 때라더니, 실감났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언 보일러 녹이기’를 찾아봤다. 이런 저런 기술과 기법들이 난무한다. 그 중에서 신뢰가 가는 방법은 헤어드라이어 .. 2021. 3. 17.
아내는 책, 남편은 공간 10년 전 주택 설계로 만난 건축주와 회의 중에 나눈 대화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다. “집이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공간”이라고 대답한 일이다. 이 당연한 말이 왜 그리 마음에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멋지게 디자인된 집, 특색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집, 멋진 경관을 가진 집은 많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에게 “정말 편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지 모르겠다. 사는 사람이 제일 편해야 하기에 기준도 제각각이고 답도 다르다. 어쨌든 그 말을 마음에 새긴 후로는 건축주가 무엇에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하는지 알아내려고 다양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면 바가 있어야 하고 영화를 좋아하면 AV룸을 만들어주어야 하며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면 기도실이 있어야 한다. 아.. 2021. 3. 17.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프랑스에 살았던 시절의 경험 중 가장 좋았던 건 100년이 넘은 아파트에 살아 보았다는 것이다. 오래된 도심 지역이라 건물들은 대부분 백년, 이백년은 족히 된 건물들이었고, 강 건너 마을에는 몇 백년이나 된 소위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살았고 예쁘게 꾸며진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었으며 주말마다 장이 섰다. 우리가 살던 집은 하수관이 낡았지만 큰 문제없이 살았다. 우리는 왜 이런 곳이 없을까. 백 년 된 아파트나 건물이 이렇게 희귀할까. 한국 건축은 주로 목재로 지어졌고, 근대 시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이나 새로운 건축물들이 전쟁을 겪으며 많이 파괴되었기에 오래된 건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전쟁 후 재건시대에 지어진 건물들도 벌써 오륙.. 2021. 3. 17.
자동차의 나라 지난 몇 주 동안 생소한 건축용어가 매스컴을 휩쓸었다. 1층을 기둥으로 들어올린 구조인 ‘필로티’가 그것이다.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필로티의 기둥이 파열된 다세대 주택 사진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필로티=지진에 취약‘이라는 공식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하다. 꼭 그렇지 않다며 건축 전문가들이 필로티 구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역부족이다. 필로티 구조가 지진에 취약한가를 밝히는 것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문제다. 그러나 기둥이 파괴된 채 서있는 건물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합리적 논쟁의 여지를 앗아갔다. 사람들 뇌리에 필로티 건물은 지어서는 안 되는 건물로 각인되었다.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필로티를 보면, 현대건축의 주요 요소로 필로티를 언급했던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제’가 울고 갈 노릇이다. “.. 2021. 3. 17.
지구에 그리는 그림 발톱을 깎다가 물끄러미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발은 참 신기하다. 작은 발에 발가락이 10개나 붙어있다. 뭐가 저렇게 많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건을 집거나 기구를 다루는 것에 알맞게 만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걷는 것’만큼은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발은 걷는 순간 본래의 역할을 시작한다. 많이 걸어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건강을 위해 하루에 1만보 이상 걷겠다고 다짐하고 스마트폰에 만보계 앱을 깔았지만 날마다 붉은 색의 막대만 늘어난다. 차를 가져가면 심지어 200보가 안 되는 날도 있다. 인간은 직립보행한 이후부터 쭉 걷고 또 걸었다. 인간의 걷기는 길을 만든다. 우리가 걷는 길,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인간이 걸으며 만들어져 .. 2021. 3. 17.
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안 그러면 망가져!” 강화도 솔정리 고씨 가옥이라는 문화재 고택에서 들었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한 방송국 촬영팀과 함께 강화도 근대건축 답사를 다녀왔는데, 촬영 말미에 방문했던 고택에서였다. 할머니는 강화도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며느리로 평생 살아왔는데, 이제 그 집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다. 집이 문화재가 되면서 건물 보존의 이유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족은 바로 옆에 현대식 주택을 짓고 생활한다. 할머니로부터 이 집을 지은 유래와 당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온 가족이 모여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갓 시집와서 썼던 방, 도련님방,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방을 차례대로 설명했다. 할머니 이야기는 광대하게 넓은 부엌과 찬방에서 절정에 달했다..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