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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단상 옛날 살던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떠난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당연하게도 동네는 몰라보게 변했다. 그런데, 시장이나 학교, 뒷산 등 동네를 특징짓던 장소들은 기억의 모습 그대로여서 반가움이 왈칵 몰려왔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그대로 있을까. 옛날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가슴 한구석이 두근거렸다. 야구 캐치볼을 하던 골목길은 그대로일까. 창문으로 보이던 옆집은. 순간 ‘와’ 라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 집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그때 그 모습으로. 주변 다른 단독주택들은 모두 다세대 빌라로 바뀌었는데, 꿋꿋이 살아남은 집을 보니 뭉클했다. 결혼 40주년을 맞은 배우 윤정희, 백건우 부부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 중차대한 결혼기념일에 부부는 처음 만났던 중국음식점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 거.. 2021. 3. 17.
이웃되기의 어려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7211556915592?NClass=HJ02일요일 아침 이불 속에서 모처럼 게으름을 피우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한창 공사 중인 현장 건축주 번호가 떠있길래 얼른 받았다. “윗집 건너편 땅주인 P씨가 포크레인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있어요.” 황급한 목소리였다. 씻는 둥 마는 둥 과속을 해가며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포크레인 소리와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다. 지금 다세대 주택 공사가 한창인 이 지역은 주변이 1등급 비오톱 지역이라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숲이 우거져 있고 4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아무리 자기 땅이라도 그렇지, 여긴 비오톱지역이 아닌가. 막무가내로 나무를 베어내고 흙을 파서 땅을 무너뜨리는 걸 두고 볼 수 없.. 2021. 3. 17.
나에게 맞는 높이 결혼 전 신혼집을 구할 때 아내는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는 아리랑 고개를 넘지 말 것. 두 번째는 싱크대가 높은 집을 구할 것. 아리랑고개란 돈암동에서 미아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언덕을 말하는데, 당시 아내의 회사가 혜화동에 있었던 까닭에 회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싱크대는 아내의 큰 키 때문이었다. 낮은 싱크대가 너무나 불편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리랑 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싱크대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높은 싱크대를 둔 작은 빌라를 찾는 건 사막에서 진주를 찾는 정도의 일이었으니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역시 싱크대는 불만을 넘어 지탄의 대상인데, 요즘엔 아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도 해서 자못 심각해졌다. 아침 식사 설거지 담당이 되면서.. 2021. 3. 17.
단열에 대하여 몇 해 전부터 알러지성 비염이 슬슬 생겨서는 중증환자가 되어버렸다. 내 알러지의 원인은 먼지도 진드기도 아닌, 찬 공기와 바람이다. 몸 내외부의 온도 차가 커지면 그걸 조절하지 못해 몸이 으슬으슬, 콧물이 주룩주룩한다. 공사현장을 다니는 내겐 먼지 알러지가 아닌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만, 요즘처럼 더위가 막무가내일 때 시원하게 에어컨 한번 쐬지 못하고 바람 닿지 않는 구석으로 피하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저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때면 도처에 지뢰가 깔린 전쟁터를 지나가는 심정이 되곤 한다. 환절기나 겨울은 말할 것도 없다. 남들과 다른 온도 기준을 가진 나는 심지어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해야 할 상황도 생긴다. 각자 편한 잠자리에서 숙면할 권리는 있어야 하므로. 리모델링하는 주택의 건축주가 “이 창을.. 2021. 3. 17.
편의점 도시락 단상 정보통신(IT)관련 일을 하는 30대의 처남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어쩌다 처남의 원룸을 방문하면 밥 해먹은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뭐 먹고 사냐?’ 라고 물으니 ‘편의점’이란다. 평소 말이 없던 처남에게서 편의점 도시락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말수 적은 남자 둘이 대화하기에 적당한 주제다. 편의점별 도시락의 종류, 가격, 특징까지 완벽 분석한 후 ‘00 도시락이 제일 괜찮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혼자 살거나 혼자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이란, 반가우면서도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소규모 건축사무실을 운영하는 나의 경우에도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자주 있다. 한창 식사시간은 일부러 피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먹기가 눈치 보인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는 아직도 쭈뼛거려진다. 그러니, 편의점 도시.. 2021. 3. 17.
버리는 삶 버리기 열풍이다. 서점에는 버리는 삶을 예찬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다. 몇 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과 신지 않는 신발, 읽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 등 쓸모없는 것들을 냉큼 치워버리고 가벼워지라고 한다. 나도 버릴 게 없나 둘러본다. 책장을 열어 보니 수십 년 된 대학교 교재랑 시집간 누나가 두고 간 당시를 풍미했던 책들이 눈에 띈다. 옷장 안쪽에 제대할 때 입고 나온 군복과 야상도 있고, 창고에는 1993년에 샀던 맥켄토시 컴퓨터도 있다(켜보니 띵- 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애틋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 물건들을 꼭 버려야 할까. 나는 잘 버리지 못한다. 잘 사들이지도 않으니 이 케케묵은 것들을 버리지 않더라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버려도 무방한 것과 남겨두어야 할 것... 2021. 3. 17.
집은 기억이다 봄이다. 누구에게는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건축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건축의 계절’이다. 건축주들은 땅이 풀리고 바람이 좋은 시절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어서 집을 짓자고 독촉 또 독촉이다. 개구리만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겨울 동안 도면으로 존재하던 ‘집’도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이 봄날, 꽃과 나무를 보러 산으로 들로 나가는 사람들과 반대로, 건축인들은 흙먼지 날리는 건축현장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간다. 몇 년 전부터 주택 설계 의뢰가 많아졌다. 특히 30,40대의 젊은 부부들이 자주 찾아왔다.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전세금에 충격을 받아 좀 떨어진 곳이라도 좋으니 땅을 사서 내 집을 짓겠다고도 하고,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둘러본 끝에 찾아낸 작고 오래된 단층 주택을 자신의 삶에 맞.. 2021. 3. 17.
홍제동 주택 (아우어하우스) (2020) 리빙센스에 실린 기사 ↓↓↓ https://www.smlounge.co.kr/living/article/45201?smshare=urlShare 서울에 단독주택을 짓다 이것저것 효율성을 따져가며 뻔한 공간에서 살 바엔, 동서남북에 창을 낸, 층고가 5m에 달하는 집을 짓고 말겠다. 일러스트 작가 김상인의 집, 아우어 하우스. www.smlounge.co.kr 브리크에 실린 기사 ↓↓↓ magazine.brique.co/project/%ec%95%84%ec%9a%b0%ec%96%b4-%ed%95%98%ec%9a%b0%ec%8a%a4-hour-house/ 아우어 하우스 Hour House - 브리크매거진 - BRIQUE MAGAZINE 에디터. 장경림 글 & 자료. 디에이엘 건축사사무소 DAAL 가장 편한 .. 2021. 3. 17.
논현동 근린생활 시설 리모델링 (2020) 2020. 8. 31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