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퍼니싱(home furnishing)이라는 말이 있다. ‘집 꾸미기’, ‘집 단장하기’라는 뜻인데, 가구, 소품, 패브릭 등을 통합해서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다. 홈퍼니싱을 표방한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우리도 수준 높은 디자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누려 보는구나, 생각했다. 건축가들이 다채롭게 활동하고 건축자재며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물의 외관은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집 안을 채우는 일은 결국 집주인의 몫이다. 그건 집주인이 자신의 취향을 공간에 반영하는 경험이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케아가 완벽한 해답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재료가 아주 좋은 것도,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가구부터 조명, 식기, 공구, 화분, 소시지와 쿠키까지 온갖 분야를 한자리에서 경험하는 장소는 그 전까지 없었다. 과거로 거슬러 우리 부모님들이 집 단장할 때를 생각해 보자. 그땐 가구를 하나씩 들여가며 집을 꾸몄는데, 신기하게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 가구점을 하거나, 가구 공장을 하고 있어서 인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장식장과 소파 등 각각이 따로 논다. 디자인 좀 안다는 사람들도 가구를 사려면 조명 따로, 의자 따로, 장롱 따로 매장을 찾아가야 해서, 이것들을 서로 어울리게 조합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그나마 을지로와 논현동 가구거리는 그 수고를 조금 덜어주긴 했다. 사실 이케아가 생기기 전까지 건축주들과 이런 곳을 다니며 발품을 팔아 어울리는 몇 가지를 고르곤 했다. 이제는 건축주들에게 이케아부터 가자고 말한다. 집에 필요한 것들을 한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의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 오픈 초기에 완공된 집의 A씨는 매일 같이 이케아를 다녀왔다. 현장을 갈 때마다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수납도구, 거울, 신발장 옆에 놓는 작은 장, 스탠드조명 등 부수적인 작은 아이템들이 필요한 곳에 조용히 놓였다. 그 다음 설계한 집의 B씨는 한술 더 떠서, 세면대, 거울장, 주방의 아일랜드를 사다가 직접 조립하고 설치까지 했다. 처음엔 끙끙거리며 조립에 애를 먹었지만 점차 이케아 조립의 도사가 되었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의 가구를 대신 만들어주기도 하고 집 내외부의 간단한 시공까지 도전하더니 이제는 현장 인부를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인테리어는 디자인을 잘 아는 누군가가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한 가지씩 만들어 보면서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비싸고 유명한 가구로 채운다고 그 공간이 나다워지는 것은 아니고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이질감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모델하우스에서 꿈꾸던 집을 발견할 거라고 기대하지만, 최고급사양의 가전제품과 가구들이 늘어선 공간은 “이 정도는 살아야 되는 거 아냐?”라며 현실을 초라하게 만든다.
이케아는 수천 가지 상품을 골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홈퍼니싱을 보여준다. 조합에 따라 답이 무한하다. 이것저것 배치해보고 경험하고 변경하다 보면 괜찮은 해답에 이른다. 처음에는 무엇을 조합해야하는 지도 모른다. 쇼룸을 보며 어떤 식으로 가구가 배치되는 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비치된 몽당연필과 리스트를 들고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보자.
나는 그곳에서 건축주가 선호하는 것들을 알게 된다. 그들이 좋아하는 수전은 동그란 건지 길쭉한 건지, 주방싱크는 도자기로 된 걸 좋아하는지, 스테인리스 스틸인지, 조명은 펜던트형과 스탠드형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는지, 책상은 호두나무로 할지, 물푸레나무로 할지....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이 어떠한지 생각할 기회도, 연습할 기회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집 꾸미기의 시작이 아닐까.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 이케아가 있는 풍경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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