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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68

카페에 거는 작은 기대 처음 사진을 봤을 때 마음이 들떴다.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와 풍광 좋은 자연, 역사적 이야기가 있는 본채 등등에 마음이 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름이 ‘굿모닝 하우스’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일요일 오후에 급작스럽게 수원까지 간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멋진 곳에서 느긋한 휴일 오후를 보내고 싶었고, 근대건축의 새로운 쓰임에 늘 관심이 있었기에 얼른 가서 보고 싶었다. 기대가 깨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옛 공관의 간결한 디자인, 마당 너머로 신축한 카페의 비정형 디자인은 보는 즐거움을 충분히 주었다. 건축가가 많은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카페 내부에서 내 시선에 잡힌 것들은 기분 좋은 발걸음을 막아 서고야 말았다. 어수선하게 배치된 의자와 한쪽에 밀쳐져 있는 각종 행사.. 2021. 3. 17.
현장의 목소리 “그걸 고치면 800만원 밑집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좀 봐주십쇼.”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날아든다. 공사현장의 목수반장이다. 공사가 도면과 다르게 되어있어 바로잡으려 할 때면 늘 듣는 소리다. “어려우신 건 알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다시 고쳐야 합니다. 거긴 그냥 넘어갈 부분이 아닙니다!” 내 목소리도 커진다. “어제도 벽체 틀리셨잖아요. 그건 그냥 넘어갔지만 이건 안됩니다, 절대!” 대화는 좀 더 이어졌지만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 시공사 대표에게 강력히 항의한 끝에 상황은 강제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다음날 현장에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분명 분위기가 좋지 않아 감리 나온 건축가를 고깝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소장님 반장님 하며 좋던 사이가 한 순간이 어그러진다.. 2021. 3. 17.
좋은 창의 비밀 유리창은 아름다운 발명품이다. 창으로 인해 집 안의 삶은 획기적으로 아름다워졌다. 내부에서 바깥을 본다는 것, 비도 바람도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면서 안전하게 바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삶과 집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창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좋은 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리적으로 좋은 요소, 심리적인 좋은 요소 등으로 무장한 스펙 좋은 집을 설명하려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하게 된다. “많은 노력을 들인 집이 좋은 집에 가깝지 않을까요”라고. 그런데 이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공들인 집과 아닌 집의 차이는 창문에서 드러난다고. 얼마 전 건축주와 함께 주택단지를 보러 갔다. 풍경 좋은 산의 한쪽 사면을 모두 택지개발해서 분양하는 곳으로 대부분 시행사가 만.. 2021. 3. 17.
논쟁의 도시 용도 폐기된 서울역 고가를 보행로로 바꾼 ‘서울로7017’에 대해 SNS상의 반응이 뜨겁다. 근래 이렇게 논쟁적이고 뜨겁게 타오른 건축 주제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호평과 혹평, 감상평이 다양하다. 내 페이스북에도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지만 호평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더 크다. 비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표현하기 때문일까? 어느 페친은 오픈 전부터 혹평을 쏟아내다가 서울로를 다녀온 뒤로는 더욱 흥분해서 목청을 높였다. 이해할 수 없는 직선적인 비난에 적잖이 불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숨기기 기능을 사용하고야 말았다. 비난의 포인트는 다양하다.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바꾼 시도 자체를 비난하는 것부터 설계에 대한 실망감(2등 안이 더 좋았다는 의미)을 토로하기도 하고, 콘.. 2021. 3. 17.
밤의 종묘 밤은 오묘한 시간이다. 낮에 뻔하던 것들도 적당한 빛을 주면 이내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일상적이고 이성적 공간이 감성적이고 낭만적으로 변한다. 과도한 빛으로 불쾌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밤과 건축은 재미난 관계다. 낮의 에펠탑과 밤의 에펠탑은 냉정과 열정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지 않은가. 프랑스 유학시절 살았던 리옹이라는 도시는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까지 시대별로 유적이 많았다. 집 근처 쏜 강(청계천 정도의 넓이)을 건너면 시간여행을 하듯이 훌쩍 과거가 펼쳐졌다. 문화유산과 관련한 행사들이 자주 열린 덕에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 푸르비에르 언덕 위에 있던 고대로마의 원형극장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책으로만 보던 원형극장을 처음 대면했을 때 신기한 감정으로 둘러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2021. 3. 17.
커피와 공간 나는 커피를 하루에 세 잔 이상 마신다. 단 음료는 한 잔 이상 마시기 어렵지만 커피는 연거푸 여러 잔도 가능하다. 커피는 노동의 음료라고 했던가? 일할 때 커피만큼 알맞은 음료도 없는 것 같다. 집중해서 일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회의할 때, 어딘가 손님으로 찾아가서 기다릴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물음. “어떤 커피 하실래요?” 길거리에 두세 집 걸러 한 집은 커피숍일 정도로 커피가 장악한 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커피숍이 있었지만 여학생과 미팅할 때나 갔고, 그조차도 지금의 카페와는 분위기가 영 달랐다. 그때 학생들에게 커피의 공간이라면 학생회관이나 도서관의 커피 자판기 근처였으리라. 커피 자판기는 끽다와 흡연의 장소이자 휴식과 담소와 회합의 장소였다. 다 마신 종이컵을 눌.. 2021. 3. 17.
검문 당하는 남자 불심검문 한번 당해보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마는 나는 어려서부터 검문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키가 컸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집 앞을 나서자마자 경찰에 붙들려 가방을 열었고, 정독도서관에 자주 가던 고등학생 시절엔 백이면 백 경찰이 보는 앞에서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 종로 쪽으로 갈 때도 검문은 끊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민정당’ 당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들로 가득 찼던 종로 거리를 걷는 일은 어린 내게 큰 재미였으나 그만큼 답답하고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팔십 년대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 1996년 겨울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소위 닭장차(전경버스)에 끌려갔다. 집회에 참여했다거나 시국선언을 한 .. 2021. 3. 17.
감동의 배신 여행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무작정 길을 걷거나 가능하면 보통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가 골목길을 거닐곤 한다. 오래되고 범상치 않아 보이는 집이 눈에 띄면 이리저리 둘러보고 들어가 본다.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다. 얼마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도 숙소 근처의 골목길을 무작정 걸었다. 산책하려면 큰 도로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한 블록 뒤쪽의 작은 도로가 더 흥미로운 법이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안락한 느낌에 몸을 맡기고 걸어가는데, 멀리서 길게 둘러진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 너머로는 잘 자란 향나무들이 빼곡하게 보였다. 공원이 아니면 사찰인가 싶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담 안쪽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호기.. 2021. 3. 17.
건축가의 선택 작업실이 이사한 후 남영역을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전철역 플랫폼에 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세로로 난 좁은 창문과 검정색 벽돌이 인상적인데, 이곳은 과거 서슬 퍼렇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김근태 씨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87년 1월 학생 박종철이 끌려가 물고문 끝에 죽임을 당했던 그곳이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다. 이 불편한 장소를 매일 아침저녁 보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이 무척 세련되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답다. 김수근의 그림자라고도 불린다 한다. 한국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선배 건축가가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는 건물도 설계했다니,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의뢰 받았을 때 건축가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건축가는 이곳이 ..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