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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반지하 다시 보기

by 봉볼 봉볼 2021. 3. 19.

반지하가 무조건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지속된 것은 아니다. 이색적인 상업공간으로 바뀌어 공간의 새로운 묘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편리한 이점도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은 건축과 서사가 절묘하게 엮인 영화다. 삶의 현격한 격차를 보여 주는 고급주택과 반지하 공간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피부에 닿는 듯 생생하고 날카롭다. 영화에서처럼 모든 반지하가 ‘빈곤’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지하=저렴한 주거’라는 인식은 만연되어 있다. 보통 오래된 주택이나 연립에 있다 보니 노후되었고 설비나 환경이 열악하다. 저렴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만만한 주거이기도 하다. 한편, 홍대나 신사동에서는 반지하 주거가 상업용으로 전환되면서 활발한 변화가 일어나 멋지고 이색적인 상업공간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반은 지상, 반은 지하인 공간, 즉 지층에 창문이 걸린 희한한 층이 어쩌다 생겨났을까? 지하 층 주거는 1970년, ‘방공호’의 개념으로 단독과 연립주택에 지하층을 의무적으로 두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냉전의 갈등이 한창이던 그때는 전쟁이란 말도 자주 등장했고 통행금지, 등화관제 같은 일도 자주 있었다. 전쟁 시 대피소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하공간은 창고 등으로 활용되다가 198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부족한 주거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집주인은 세를 받아 좋고 세입자들은 싼 가격에 방을 구해서 좋았다. 1984년에는 이런 지하층 규정을 좀 더 완화하여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 했다. 지하층이 지상부로 어느 정도 나오게 만들어서 환기나 채광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반지하 공간이다. 이를 통해 반지하방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나중에 지하층을 의무적으로 두던 규정은 폐지되었지만 이미 반지하 주거는 서민들의 대표적 주거공간이 되었다.

반지하방은 내게도 익숙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후반, 부모님은 살던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내부에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고 안방 밑에 방을 하나 더 만들었다. 마루에서 내려가던 부엌이 지상으로 올라온 것도 이때다. 원래는 대문 옆에 작은 방을 세를 주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점점 자란 탓에 공간이 더 필요해서 특단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간방은 누나들이 쓰게 되었고 반지하 방은 세를 주었다. 젊은 오누이가 살았는데 가끔씩 그 방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포근함이 기억난다. 창이 많이 없다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축을 공부하고 난 후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니 과연 제대로 방수와 방습, 단열 공사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적은 예산에 맞게 공사했기에 오래 살기에 좋은 공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 오누이는 그 방에서 몇 년을 살다 이사를 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반지하가 무조건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지속된 것은 아니다. 이색적인 상업공간으로 바뀌어 공간의 새로운 묘미를 보여 주기도 하고 편리한 이점도 있다. 반 층만 내려가도 되니 진입이 편리하고 활용도는 1층과 거의 비슷하다. 길거리에서 창이나 문을 통해서 내부가 보이기 때문에 상가로서 매력적이다. 지상층보다 계절의 영향도 덜 받고 포근함이 느껴진다. 주거로서는 단점이었던 것이 장점으로 전환된다. 때문에 임대료도 1층과 반지하가 비슷하게 형성되기도 해서, 신축 건물에도 일부러 반지하와 약간 올라간 1층으로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시대에 뒤처지고 노후하다 치부하던 동네가 핫플레이스가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표적 달동네였던 해방촌이 멋진 전망과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인기가 많아지면서 젊은이들의 동네가 되었고, 작고 좁다고 기피했던 집들이 요즘 세대의 취향에 맞는 아늑한 집으로 변하고 있다. 반지하 만큼이나 슬픈 사연이 흘러나오는 옥탑방도 단열 같은 기능적인 부분이 해결되면서 옥상 테라스를 가진 멋진 루프탑이 된다. 어쩌면 ‘기생충’이 은유하는 공간도 우리 시대의 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구원 건축가

[삶과 문화] 반지하 다시 보기 (hankookilbo.com)

 

[삶과 문화] 반지하 다시 보기

반지하가 무조건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지속된 것은 아니다. 이색적인 상업공간으로 바뀌어 공간의 새로운 묘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편리한 이점도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엔터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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