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만에 병원을 지을 수 있을까? 중국 정부가 우한시에 1,000여개의 병상을 가진 대형 병원을 단 열흘 만에 짓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얼마 뒤, 수십 대의 포클레인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밤낮 없이 콘크리트를 붓고 자재를 나르더니 놀랍게도 열흘 만에 병원이 지어졌고 환자 병동이 꾸며졌다. 이 과정은 인터넷에 계속 중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저 포클레인이 왔다 갔다 하는 단순한 영상일 뿐인데도 그 광대한 땅을 오가는 수많은 공사 차량이며 그 스케일이 너무 놀라웠기에 잊히지 않았다. 이것이 중국이구나!
당연하게도 이 병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형병원처럼 시설이 완비된 건물은 아니다. 내부는 단순하고 열악하기까지 해서 병원이라기보다 수용소처럼 느껴진다. 이는 오로지 코로나19 환자들을 수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긴급 구호 건축’이라고 부른다.
긴급 구호 건축은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다. 쉬운 말로 공장생산 조립식 건축이다. 전기배선, 단열, 급수, 배수 등이 들어간 벽체와 바닥 등을 공장에서 제작해서 현장으로 옮겨 곧바로 조립하여 건물을 만든다. 모듈은 운반이 용이한 크기와 형태로 디자인된다. 이런 모듈을 쌓고 연결해서 공간을 기능적으로 확장한다. 건축과정은 레고 조립과 유사하다. 하나씩 쌓고 붙인다.
전염병과의 싸움에도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는다면 열흘은 겨우 기초를 다져서 1층 바닥을 만들 정도의 시간이다. 그 사이 병에 대한 대응이 늦어진다면, 건물을 다 짓는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지진, 쓰나미, 수해 등 자연재해가 빈번한 지역이 늘어나고 전쟁이나 감염병 등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들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긴급구호 건축이 필요하다. 체육관에 구획을 만들어 시민들을 수용하는 소극적 단계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건축가들의 고민과 해법도 더해지고 있다.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종이관 건축을 제안했다. 가볍고 구조적으로 튼튼하며 운반과 제작이 쉬운 장점이 있다. 장비와 숙련공이 거의 없는 재해 지역에서 집을 만들 때 적합한 방식이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이 발발했을 때 난민들을 수용하는 임시 대피소를 종이관과 천막으로 만들었고,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2011년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종이관으로 대피소, 주민센터, 성당 등을 만들어 주민들을 도왔다. 이후 종이관은 시게루 반의 상징이 되었다.
‘뉴 스토리’라는 비영리 단체와 스타트업 ‘아이콘’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주택난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들은 공동으로 멕시코, 엘살바도르, 아이티 등 남미 빈곤지역에 저렴한 3D프린팅 주택 800여채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략 10평 정도의 크기의 집인데 집보다 큰 대형 3D 프린터가 현장에서 계속 집을 찍어낸다. 콘크리트를 가래떡처럼 쭉 짜내어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건물의 가장 중요한 골조 부분을 만든다. 하루 만에 집의 골조를 완성할 수 있다. 만약 보편적인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면, 거푸집 짜야지, 철근 배근해야지, 콘크리트 부어야지,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 것이다.
3D 프린팅 건축은 계속 발전 중인 분야다. 우주정거장 건설에도 3D프린터는 중요한 수단이 될 예정이다. 또한 긴급 건축용이 아니라 보통의 주택에도 이미 적용되고 있는데 프랑스 낭트의 주택이 이렇게 지어졌다. 완성된 모습이 제법 멋지다. 이제, 재해지역에 음식이나, 의료진뿐만 아니라 ‘3D 프린터 10대를 보냈습니다’와 같은 뉴스를 접할 날도 멀지 않았다.
정구원 건축가
[삶과 문화] 3D 프린터와 건축의 진화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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