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골목이었다. 그 다음 날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기 전까지. 언덕 끝에 있는 사무실로 향하는 골목길이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한 길이라고 생각했지 쓰레기의 무법지대일 줄은 몰랐다. 사무실 담벼락 너머에 연립주택 거주자들의 생활 쓰레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쌓였다. 쓰레기에 예민해진 것은 처음 작업실을 얻었던 십여 년 전부터였다. 새 작업실로 이사하자마자 공무원이 쓰레기 배출 정보가 담긴 스티커를 붙여 놓고 간 것이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골목길에 면한 작은 사무실에서는 신중해야 할 사안이었다. 주택들이 많고 골목길이 복잡한 곳일수록 쓰레기 배출은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래서 새 사무실을 얻자마자 용산구는 쓰레기 배출을 어떻게 하나 주민센터에 문의해서 정확하게 따르고자 했다.
그런데, 규정대로 따르면 어느 정도 되는 일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이 좁은 골목에는 별의별 쓰레기 사건이 발생한다. 스티커만 사서 붙이면 가져가는 대형 폐기물들을 그냥 방치하고 이사 가 버린 얌체족부터 먹다 남은 음식물들까지 골목을 돌아다녔다. 어떻게 해결할까 고심하던 나는 결국 CCTV를 설치해서 범인들을 찾아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CCTV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심지어 카메라 아래 붙여 놓는 경고 문구는 더욱 싫다. 조금만 양보하고 참으면 될 것을, 고발이니 경고니 하며 살 게 뭐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어쩌랴, 대체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미치겠는걸.
며칠 후 녹화된 것들을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돌려봤다. 쓰레기를 중심으로 한 골목길 생태계의 리얼 다큐라고 할까? 생각보다 재미있다. 동네 사람들과 자동차가 지나가고, 종량제 봉투가 담벼락에 하나 둘 쌓인다. 박스나 병, 플라스틱을 담은 봉투가 놓이면 누군가가 와서 뒤져서 필요한 것을 가져간다. 그러다가 쓰레기가 나뒹굴면 우리는 어허, 쯧쯧, 혀를 찬다. 산책 나온 강아지의 배설물을 주인이 모른 척 지나가자 육두문자가 나올 뻔했다. 새벽이 되면 쓰레기차가 지나가면서 기가 막히게 종량제 봉투만 싹 챙겨 간다. 그 뒤에 음식물처리용 트럭이 와서 노란 봉투만 가져간다. 그리고 나면 작은 트럭들이 밤새 다니며 골목에 남아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굴러다니는 것들까지 다 쓸어간다. 아침 해가 뜨니 골목이 깨끗하다. 이 동네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궁금했던 의문도 풀렸다. 앞집 아줌마, 건너편 집 학생, 옆옆집 할머니가 서로 모르는 공범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도 슬쩍 뭔가를 놓고 간다. 여기는 동자동의 쓰레기 물류센터였던 것이다.
CCTV를 설치했다는 문구와 함께 문제적 인물을 크게 붙였다. 속이 불편했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날부터 쓰레기가 깔끔해진 것이다. 각자 자기 집 앞에 깨끗하게 묶은 쓰레기를 내놓았다. 이를 두고 사무실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 자발적으로 치우기 시작했다고 믿는 파와 감시가 작동해야 제대로 돌아간다는 파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문을 열고 나가는데 연립주택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엉망진창이었는데 덕분에 쓰레기가 많이 줄어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쓰레기 열사가 되고 말았다.
쓰레기가 넘치던 담벼락이 정돈된 것은 쓰레기가 줄어서가 절대 아니었다. 갈 곳을 잃은 쓰레기들은 옆 골목 가로등 아래에 쌓였다. 결국 줄이지 않으면 쌓이는 것이다. 누구는 몰라서, 누구는 알고도 귀찮다는 이유로 내버린다. 이 문제로 주민센터에 몇 번 갔지만 원론적이고 영혼없는 대답만 들었다. 어쩔 수가 없어요,라는 공무원의 대답만 들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나는 오늘도 쓰레기에 눈길을 주며 출근한다.
정구원 건축가
[삶과 문화] 쓰레기 옆 CCTV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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