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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더위를 대하는 건축가의 자세

by 봉볼 2021. 3. 17.

겨울에 시작된 집은 설계하는 내내 ‘단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건축주와 대화도 난방비, 단열, 추위 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도록 해야 하니까, 남쪽창이 점점 크고 높아진다. 공사를 하다 보면 여러 계절이 지난다. 공사가 끝나 갈 무렵이 여름이라면 큰 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볕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너무 크게 만들었나 정신이 아찔해진다. 밝아서 좋긴 하지만 처마를 좀 더 내밀 걸 그랬나, 창 하나를 없앨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서 빨리 겨울이 다시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올여름처럼 설명할 길 없는 무더위 앞에서는 ‘열’ ‘더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년에 입주한 건축주를 만나러 갔다가 나눈 대화도 ‘더위와 집’이었다. 이 집은 건물 중앙에 계단실이 있고 그 위로 커다란 천창이 설치되어 있어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 엄청나다. 방문한 날도 최고 온도를 경신하던 날이었다. 천창에서 밀려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이 집은 겨울에 완공했다. 집주인도 입주하면서 ‘햇빛이 참 따듯해서 좋아요’라며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올여름엔 고개를 푹 숙이게 되었다. 욕심이 과했나. “천장 밑에 천막이나 블라인드를 설치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해 보았다. 집주인은 “뭐 괜찮습니다. 며칠만 견디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빛이 들어오는 게 좋아요”라고 했다. 사실 단열이 잘되면 여름에도 덜 덥다.

집주인은 거실이 아니라 지하층으로 안내한다. “지하가 제일 시원해요.” 건축주의 일터인 작업실을 지하에 두었는데 바로 그곳이 이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란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모두 지하로 내려간다.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하다.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커피와 수박이 지하로 내려왔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는 완연한 가을이라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위층 거실로 모든 손님을 안내했는데, 여름엔 지하 작업실이다. 갑자기 지하실이 있는 이 집이 무척 부러워졌다. 내년에도 이런 날씨가 계속 된다면 앞으로는 집집마다 지하실의 설치를 필수적으로 고려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건축물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한옥이 그러하다. 햇빛이나 바람, 나무 등 여러 자연요소들을 끌어들이거나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집 내부의 온도나 습도를 조절했다. 긴 처마나 멋진 창은 그 자체로 시각적 멋도 있지만 자연환경에 대응하면서 발달한 무척 과학적인 산물이다.

에어컨 등 공기조화설비들이 발달하면서 건축가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멋지고 세련된 고층 유리건물은 에어컨과 엘리베이터 발전으로 가능했다. 사상 최대의 더위, 추위가 발생하는 지금. 유리 고층건물들은 다양한 설비와 단열 기술들로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유리의 단열 성능은 더 좋아지고 있고 에어컨 설비는 공기정화까지 완벽하도록 발전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기후의 변화 속도도 매우 빠르다. 외부 자연에 대해서는 기술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멋진 디자인을 만드는 데만 집중했던 건축가들의 자세도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과 기술자들이 노력한 결과물 중 하나다. 외부 환경과 단절되던 초고층 건물의 디자인에도 자연환경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이러한 노력의 속도가 기후변화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소극적일지도 모르는 작은 결심을 해 본다. 앞으로 설계하는 집에는 나무를 한그루라도 더 심고 에어컨을 한번이라도 덜 켤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보기로.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 더위를 대하는 건축가의 자세 (hankookilbo.com)

 

[삶과 문화] 더위를 대하는 건축가의 자세

겨울에 시작된 집은 설계하는 내내 ‘단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건축주와 대화도 난방비, 단열, 추위 등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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